최저임금 인상하면 회사 망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의 자영업자는 무슨 악의 축이 된 기분이다. 탈세와 노동착취로.
어디서부터 이 갈등이 시작되었을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생각 해 오던 것들이 있어서 정리를 해 봤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을 오래 한 사람도 아니며 나이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살면서 본 세상에 대해 이정도 글을 쓸 정도는 공부한 것 갔아서 정리 해 두었다. 내일이 되면 오늘 이 기분은 사라져 있을 테니까.


-저임금으로 성장한 한국경제

60-70년대의 화두는 경제성장 였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나라가 자신의 노동력 희생이 국가 발전과 우리 자식들을 잘 살게 할거라는 희망에 가득 찬 시기. 결국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아랫사람을 부리기 위한 술책이었고 정부의 국민 획일화 작업의 결과였다는게 밝혀지긴 했지만 그것이 밝혀진건 20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다락방같은 공장에서 하루종일, 15시간씩 미싱을 돌리고 가발에 머리를 붙이고 냄새나는 인쇄기를 돌려 얻은 돈은 집 월세와 한달 생활비로 빠듯했고 남은 돈은 저축했다. 그것이 행복인줄 알았다. 단칸방에서 네식구가 칼잠을 자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30년 전 이야기. 나도 기억하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전태일 같은 사람들이 몸에 불을 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근로기준법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준수하라고 했다. 노동자를 일요일에 쉬게하라고 외쳤지만 그의 죽음으로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일어나려고 하면 폭압의 정치로 노동자들을 더 탄압했으니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고용주에게 대들면 고용주들은 '당신 말고도 일할사람은 많으니까 나가'로 응수했다. 그렇다고 고용주들이 돈을 산더미같이 벌지도 않았다. 그들도 간신히 노동자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관리자였다. 간혹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었다. 집 사고 텔레비전 사고 하는 사람들. 그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노동자를 혹사시켰을 것이다. 그래야 돈을 버는 시기였으니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회사에서 가난한 월급봉투를 받으며 가난한 밥상을 받으며 일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희망은 있었다. 앞으로는 살기 좋아질거야라는 희망.
그리고 80년대 들어 기적이 일어났다.


-IMF와 고통분담, 그리고 정년퇴직

80-90년대의 호황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삶이 풍족해졌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칼라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이 기뻐했다.
그러나 그 성장은 모래위에 지은 집이었다. 회사들은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투자유치보증을 받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 우물을 계속 퍼냈다. 선순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곳의 우물이 바닥났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무서운 속도의 연쇄부도가 일어났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는 회사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여기서 고용주들이 좋아할만한 또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월급을 적게 받아도 좋으니 문은 닫지 말라'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정말 당연한 일이다. 문을 닫아서 수입이 '0'이 되는것보다는 적은 수입이나마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계에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한번 버텨보자'는 심리가 기업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고통분담의 시작이었지만 또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고통분담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반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명예퇴직이 그 이름이었다. 허울좋은 이름이었지만 이건 중동지방의 명예살인과 같은 이름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무슨 명예란 말인가. 이 명예퇴직자들은 일 할곳을 찾아 돌아다니게 되었지만 일 할 곳은 없었다.


-일할 곳 없는 대학생들과 노동력이 없는 중소기업 현장

대한민국 80-90년대의 특징은 높은 교육열이었다. 50-60년대를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조건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들은 그런 곳에서 일하게 하고 싶지 않아 자녀 교육에 적지않은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50-60년대를 살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연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상공업 보다는 농업중심 국가였기 때문에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이들이 경제생산의 하위계층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들이 벌은 돈은 고스란히 자녀 교육에 '투자'되었다. 중간에 한번 '사교육 금지법'이라는 믿기 힘든 일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시대를 거쳐 점점 많은 대학생들이 양산되었다. 양산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 밖에 없다. 대학생들의 목표는 '대기업 취업'이었으니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문과 사회적 이상을 위해 대학을 가지 않았다. 대기업과 공무원 취업을 위해 대학에 들어간 것이고 그 생각의 중심엔 부모들의 강요가 있었다.
부모들의 뜻을 따라 자녀들은 모두 대기업과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줄세우기 뒤에는 뒤쳐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의 진리에 따라 뒤쳐진 사람들은 지식중심 산업이 아닌 노동력 기반 산업읠 가야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얼마를 들여 대학까지 나오게 했는데 공장에 보낸단 말인가'라는 논리였다.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이들은 '혹시 나에게도?'라는 생각으로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될때까지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취준생들이 생겼다. 취준생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소기업 현장에서의 일손은 부족했다. 일을 발주 받고도 문을 닫는 흑자도산 업체들도 많이 발생했다. 이를 본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또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국가에서 장려하는 창업이 불러온 참사

취준생들이 많아질수록 경기는 점점 침체되어 갔다. 소비를 해야 경기가 돌아갈텐데 취준생들은 수입이 없으므로 소비를 크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때 정부에서 새로운 카드를 제시했다. 창업. 당신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취준생들과 젊은이들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창업 보육센터가 만들어졌고 창업을 위한 직무 교육이 생겨났다. 적은 비용으로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학원과 관계기관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말 그대로 선순환이었던 것이다.
창업열풍은 젊은이들 뿐만 아니었다.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회사에서 퇴직당하면 수입은 '0'이 된다. 퇴직금은 고정적인 수입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논외로 쳤다. 그런데 창업을 하면 초기 투자 자금은 있겠지만 매출이 발생하면 수입이 생긴다. 구미기 당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명예퇴직자들이 할 수 있는 창업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명예퇴직자들은 영업직보다는 사무를 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회사에서 배운 기술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들은 소위 '먹는장사'에 자신들의 돈을 들이밀었다. 대부분의 음식점 개점자들의 심리는 뻔하다. 하나는 음식매출이고 다른 하나는 권리금 불리기다. 이 두가지는 동반상승한다. 음식 매출이 오르면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권리금을 올려 받을 수 있다.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많은 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좋은 상상은 여기까지다.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면 앞의 두개는 동반하락 하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걸 예측하지 않은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이 50대를 무자비하게 공략했다. 동네에 수많은 치킨집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장사를 해 본 적도, 음식을 팔아본 적도 없었다. 가맹비만을 남긴 채 수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퇴직금을 두둑하게 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좀 남겼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시작했기 때문에 빚만 남았다. 사람들이 쓸 돈은 한번 더 줄어들었다.
젊은이들도 창업한다고 돈을 빌리고, 중년퇴직자들도 창업한다고 돈을 빌리고. 그렇다면 은행들은 돈을 벌었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아있는 회사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지출을 줄여 버티기에 들어갔다. 임금인상은 저지되었고 다양한 부분에서 필수비용을 제외한 비용들이 삭감되었다. 회사들의 비용삭감은 관련 업체들에게 타격으로 다가왔다. A회사에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이 회사의 외주를 받아 일을 하던 마케팅 업체의 매출에 타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사람들이 쓸 돈은 또한번 줄어들었다.


-우리는 가진것을 점점 잃고 있다.

2000년대 한국 경제는 부동산 광풍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면 오를거라는 기대희망. IMF때 풀린 많은 부도물량들을 싼값에 구입한 사람들이 이걸 되팔아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부동산으로 수익을 내려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월세자들이 내집마련을 하고 싶어했다. 어찌저찌 계산을 해 보니 월세와 은행 장기대출 이자가 같은 금액이 되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집을 사는게 맞다. 그래서 2000년대 내집마련을 할 사람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은행에 대출이자를 줬다.
그런데. 금리가 올랐다. 사람들이 은행에 줘야 할 돈이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되다 보니 쓸 수 있는 돈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족외식 횟수도 줄어들었다. 회사사정이 어려워서 임금이 줄어든 사람들은 은행에 이자를 내는 일이 점점 더 부담으로 다가왔다. 절약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임금이 동결 된 사람들은 나았다. 다시 모두가 가난해지고 있다. 들어오는 돈은 더 많은데 더 가난해졌다.


-최저임금이 올랐을때 망하는 회사가 진짜 망하면 안되는 이유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랐다. 5500원대가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최저임금이 적다고 난리고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회사 망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월금이 늘어나서 소비가 많아지면 선순환이 되어 경기가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 월급이 늘어난다고 해도 소비가 증가하는 일은 크게 없을것이다. 인상된 월급의 대부분은 부동산으로 갈 테니까.
최저임금도 못주는 회사는 망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월급도 못주면 망해야지. 그런데, 월급을 줄 수가 없어서 회사가 망하면 피고용인들의 수입은 '0'이 된다. 그럼 더 큰일이 난다.


-그래도 해결책은 임금 인상

하지만 그래도 해결책은 임금 인상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사람들은 돈을 쓸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소비의 동물이다.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저임금이 8천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시간 일하면 괜찮은 설렁탕 한그릇은 먹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최저임금이 그 수준이 되면 설렁탕 값도 오르겠지만. 영세업체가 최저임금이 올라서 문을 닫게 된다면 오른 최저임금만큼 정부가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고용주들이 최저임금을 주는 데 부담이 덜해질 것이다. 모자른 세수는 영세하지 않은 업체에게 걷으면 된다. 정부가 그리 할 리가 만무하지만.


-이 불행의 공통적 원인

단 하나다. 부동산. 이건 말해봐야 소용없지만. IMF시대의 부동산 폭탄돌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4대강 사업은 그 폭탄 심지를 잠깐 누가 늘려놓은 것에 불과하고.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도 힘들다. 책 안팔려서 죽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직원들을 뽑아 알콩달콩 회사를 다시 운영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월급도 많이 주고 재미나게 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암울한 시기가 빨리 지나 모두가 행복한 시기가 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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