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최재천 의원의 발의로 도서 정가제가 전격 시행되었습니다. 시행일은 2014년 11월 21일.

도서정가제 개정안 공청회. 가운데가 최재천 의원님 (출처: 최재천 의원님 블로그)도서정가제 개정안 공청회. 가운데가 최재천 의원님 (출처: 최재천 의원님 블로그)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려는 의도는 단순합니다.

  1. 부풀려진 도서의 가격을 정상화 하고
  2. 유통마진 절감으로 가격할인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는 온라인 서점의 독주를 막고
  3. 1권당 마진을 높여 동네서점이나 중소 출판사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양서 출판을 장려하며
  4. 문화 컨텐츠 시장의 재 활성화를 유도한다.

입니다.

명분만으로는 아주 훌륭한 정책입니다. 1981년 각급 서점의 할인율을 제한하여 작은 서점과 큰 서점의 가격을 동일하게 해 서점의 규모와 상관 없이 집에서 가까운 서점에 가 책을 구매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랑 법’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덕분에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로 더 자리매김 ‘했었죠’. 이 법을 발의 한 최재천 의원님도 이런 이상적인 상황을 생각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많은 보좌진들과 출판사들의 요청과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만드셨을 테니 꼼꼼하게 보셨을거라고 생각하고 이 법안 자체에 의의를 제기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이게 아닙니다.

1. 무료 배송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구하기 힘든 책이기 때문 일 수도 있고 저렴한 가격과 집까지 배송 해 주는 택배 배송도 그 이유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1만원 이상 구입 시 무료배송 입니다. 그런데 이번 법안에서는 무료 배송에 대한 제한이 2003년 도서정가제 발의 때와 마찬가지로 빠졌습니다.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업계의 강력한 반발이라고 하는데, 사실 도서할인 보다 이 1만원 이상 무료배송이 출판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2. 무료배송이 왜?

책의 정가가 산정되는 공식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도서 인쇄비(30%) + 물류비(물류창고에서 서점까지 가는 비용)(10%)  + 출판사 수익(10%) + 작가 인세(10%) + 서점 수익(40%)

위 공식에서 도서 인쇄비는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저렴 해 지기 때문에 더 낮아 질 수도 있겠지만, 크게 위 공식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꼼꼼하게 보시면 서점 수익이 생각 외로 엄청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정가의 무려 40%! 정가 1만원짜리 책을 판매 할 경우 서점은 4천원을 벌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이 갈라집니다.
온라인 서점은 물류공간이 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엄청 좁습니다. 말 그대로 책만 쌓아있으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사람들 걸어다니는 동선공간, 인테리어, 안내하는 직원 등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할인을 잘 못해줍니다. 포인트 적립 정도는 가능하죠.
그런데 이런 매장이 없는 온라인 서점들은 이 수익을 고객에게 1만원 이상 ‘무료배송’ 이라는 정책과 포인트와 할인 정책으로 고객에게 돌려줍니다.(…라고 그들이 주장합니다)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딱히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공급률을 낮게 책정하기 때문입니다.

공급률은 서점이 책을 구입하는 비용입니다. 위 공식에 따르면 1만원짜리 책 한권을 서점에 공급(납품)하면, 서점은 출판사에 6천원을 줍니다. 그리고 1만원에 판매하게 되면 4천원의 수익을 얻죠. 그런데, 저 서점 수익이 서점마다 다릅니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오히려 더 낮은 자신들의 수익을 챙겨갑니다. 교보 문고, 영풍 문고, 반디 앤 루니스 등의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들에 비해 공급률이 높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의 공급률은 60%(또는 그 이상인 책들도 많습니다. 80%가까이 되는 책들도 있습니다. 1만원짜리 책 1권을 팔면 오프라인 서점이 2천원을 벌고 서점이 8천원을 가져가는 책들도 있습니다)아래로는 잘 안내려갑니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의 평균 공급률은 60% 이하입니다. 다량 구매(그래봐야 10권)에는 50%까지 공급률을 낮춰달라고 합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30부 정도 다량구매시에만 금액을 낮추는데 온라인 서점은 더 적게 사가면서 더 낮은 공급률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엄청나게 팔리는 책이 아닌 이상, 같은 책을 판다면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 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처음엔 온라인 서점에서 무료배송으로 책이 엄청나게 팔리니 출판사들은 좋았습니다. 당장 현금 회전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게 장기화 되다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고객에게 가는 무료배송은 출판사의 마진을 깎아 만든 서비스 입니다. 왜냐하면 1만원 이상의 책과 1만원 이하의 책의 판매량이 완벽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비자들이 ‘무료배송’이라는 말에 익숙해 져 버렸습니다. 무료배송 때문에 책의 판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 도서 시장이 활성화 되었지만 무료배송과 도서할인 때문에 실제 출판사의 수익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3. 꼼수

꼼수라고 해봐야 유치한 것입니다.

도서 가격을 올려버린 것입니다. 포인트 할인 후, 18개월 후의 할인율과 온라인 서점들의 1만원 무료배송을 고려 해, 할인을 한 이후에도 1만원이 넘도록 책의 정가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신간의 가격이 13,000원이 되면 온라인 서점의 10% 할인과 카드사 이벤트 할인 10%를 해도 1만원을 넘깁니다. 할인을 적용 한 후 가격은 10,400원 이니 1만원 이상 무료배송에 해당되죠. 그래서 요즘 나오는 책들은 거의 다 13,000원 이상입니다. 이게 첫번째 책 가격이 상승하게 된 요인 입니다.

 

4. 그럼 현재의 책 가격은 비정상인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현재의 책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지는 않습니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이 판매되던 시절,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라는 도서가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무려 100만부 이상을 팔았습니다. 엄청난 판매고 였죠. 당시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 책 1권의 가격은 5,300원 이었습니다. 짜장면 1그릇이 2,000원 하던 시기이니 약 1:2.1 정도로 책 가격이 비쌌습니다.
2015년 현재 짜장면 1그릇의 가격은 5,000원 입니다. 저 공식을 대입하면 책 가격은 약 12,000원 정도가 됩니다. 최근 트렌드의 400p소설 한권이 15,000원 정도 하니 좀 더 비싸지긴 했지만 비정상적인 가격은 아닙니다. 김한길 시대 소설은 대부분 350p내외였고 소프트 커버 였지만 최근에는 하드커버가 대세니까요. 현재의 도서 가격은 비정상적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싸게 여겨지는 것은 당시에 비해 실제 소득이 줄어들었고, 통신비 등의 당시로서는 존재하지 않던 지출 항목이 생겼기 때문에 도서 구입에 지출하는 비용이 부담이 된 것으로 봅니다.

 

5.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기존의 책 가격은?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과하게 가격이 부풀려 진 예전에 인쇄 된 책들은 가격을 내려야 팔릴 것입니다. 할인율을 계산해서 미리 가격을 올려버린 조삼모사 식 가격 인상이기 때문에 이 정책에서도 가격을 내릴 기회를 줬습니다. 소위 ‘도서 재정가 신청’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경쟁 도서가 가격을 내리면 따라 내려야 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론 더 큰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완성된 책의 유통 경로는 인쇄소 – 물류창고 – 서점 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만든 도서에 재정가를 하기 위해서는 수정된 가격의 바코드를 한권씩 일일이 붙여야 합니다. 편의점에 있는 물건 할인되는 것 처럼 그렇게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출판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 입니다. 대신 해 주는 사람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물류창고에 있는 책에 새로 발급된 바코드를 붙여 서점으로 보내고 현재 서점에 있는 책은 다시 회수해서 바코드를 붙여야 하는데, 물량이 적은 책들은 바코드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회수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주 작은 영세 출판사들은 그냥 바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책은 포기하고 새로 나오는 신간에 집중하는 수 밖에 없죠.

 

6. 그럼 전자책은?

이렇게 유통도 복잡하고 정가 재조정 등의 난리를 칠 필요가 없이 키보드 몇번 조작하면 되는 전자책으로 출판을 하면 될테니 오히려 작은 출판사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이번 도서정가제 항목 중에 ‘전자책 활성화 기대’ 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자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요원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단말기 부족 때문입니다. 핸드폰으로는 책을 본다는게 거의 불가능 합니다. 구현은 가능하지만 종이처럼 읽기는 불가능 합니다. 그럼 모두가 아이패드 같은 패드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패드의 가격이 아직 높습니다. 5만원쯤 되면 그냥 살텐데 아직은 40만원은 줘야 합니다. 미국에서 $499짜리 아이패드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70만원대가 됩니다. 비쌉니다. 수입하면서 가격도 올랐는데 미국사람들보다 소득도 적습니다. 도저히 비할 바가 못되죠. 따라서 1인 1단말기 수준으로 가격이 낮춰지지 않는 이상 전자책은 요원한 일입니다.

 

7. 그렇다면?

전에는 18개월 후에는 책 가격이 내려가니 급한 책 아니면 18개월 후에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책을 구입하지 않습니다. 책은 없어도 살고 있어도 사니 특별하게 필요한 책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 것이죠.

 

8. 그럼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앞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렸습니다. 도서정가제가 가져 온 도서 정가 상승이 만들 미래…

저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3년 정도 되었고 제법 많은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 쯤 부터 도서 판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1일 5권 정도 팔리던 책이 1일 2권으로 도서정가제 직전에는 2일 1권으로, 현재는 3일에 1권으로 판매량이 추락했습니다. 돈을 들여 만든 제품이 판매되지 않는다는건 소비재를 생산하는 회사로서는 치명적입니다. 매출이 줄으니 수익도 줄었습니다. 따라서 제 지출도 줄었습니다. 소비가 활성화 되어야 경기가 살아나는데 저처럼 절약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소비는 더 위축되겠고 책은 더 안팔리겠죠.

일단 수많은 영세 출판사들은 조만간 도산 할 것으로 봅니다. 영세 출판사의 도산은 책의 다양성 폭이 좁아지는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래도 대형 출판사들은 필요한 책 보다 돈이 되는 책에 집중하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이걸 비난 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란게 원래 그런거니까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 날 것입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책 가격이 오르면 책을 읽는 사람과 돈이 없어 못 읽는 사람이 생깁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조차 없는 사람이 태반이죠. 그러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예전보다 더 벌어지죠. 현대인의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다고 하지만, 책에 있는 정보는 인터넷에 있는 정보보다 훨씬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은 참고 수단이지 정보 그 자체가 되긴 어렵습니다. 만약 어떤 책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가정한다면 출판사에서 책의 정가를 확 올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정보를 습득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정보에서 도태되어 버리겠지요.

아이들로 이 시선을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책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봅니다. 참고서도, 동화책도 어른들에 비하면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보는 책 가격이 올라버리면, 부모들은 지출을 줄여 아이들 책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 사이에서 정보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에 간극이 생겨 따돌림 당하거나 아니면 정보를 가진 그룹, 그리고 정보를 가지지 못한 그룹으로 나뉘게 됩니다. 아이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분열 뿐만 아니라 학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아이는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가난이 다시 대물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최악입니다.

어떤 공산품의 가격이 높으면 당연히 모조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책은 모조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 하나 하나가 작품이고 예술품이며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따라서 모조품도 만들 수 없습니다. (불법 복사 제본을 하면 만들 수 있지만 그 자체도 이미 불법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겠습니다)

책은 정보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책 가격의 상승으로 이런 기회 비용이 자꾸 증가하게 된다면 결국 계층간의 불화를 가져 올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저는 인터넷 종량제도 반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과 동영상이 포함된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어떤 사람은 텍스트 만으로 구성된 – 그마저도 요약문 밖에 안될수도 있는 – 내용을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만으로 성공한다는 ‘개천에서 용 나던’ 시기는 이제 다시 오긴 어렵습니다만, 이젠 그 개천마저도 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부의 정책으로 말이죠.

 

쓸데 없이 길었던 이 이야기의 결론은 ‘도서 정가제’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는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정보 수준이 달라져 계층간의 분열과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며칠 전 포스팅 한 강신주 박사가 말했던 것 처럼 분노와 열광이 가져온 사회의 불안한 감정이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될 것이 두렵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안한 사회는 언제쯤 올 까요. 오늘도 한숨쉬며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P.S 이렇게 적었지만, 제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저는 도서정가제를 찬성합니다. 먼 미래에 이 법이 좋은 책들을 만들게 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면서요...

P.S 2 나쁜 법안은 의외로 몇개 안됩니다. 근데 그 법안에 걸린 돈 단위가 상상을 초월하고 그걸로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들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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